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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하(時夏)가 묻고 명환(明煥)이 답(答)하다
  • 등록일 : 2018/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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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 863

광주이씨(廣州李氏)의 정체성(正體性)

- 시하(時夏)가 묻고 명환(明煥)이 답()하다 -

 

(時夏):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광이 가운데 시조 문제가 왜 그리 중요하냐. ‘이자성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떻냐란 말도 있어요.

(明煥): 그것은 문중(門中)의 정체성(正體性)에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에요.

 

: 그럼 정체성이 무엇인지요?

: 정체성은 어느 특정 집단의 구성원들만이 갖는 특유의 동질성(identity)을 말해요. 어느 한 가문(家門)이 그들만이 갖는 동질성을 잃는다면, 그 문중은 문중으로서 더 이상의 존재 가치가 없게 돼요.

 

: ‘신라 내물왕 재위(서기356~402)때 이자성(李自成)’이라하면 왜 문제가 되는지?

: 그 당시 이씨(李氏)는 오직 경주(월성)이씨만 있었으니, 우리 광이는 자연스레 경주이씨 계열에 들게 돼요. 그에 따르면 700여년 깊게 뿌리내린 소중한 우리의 정체성이 소멸되고 마는 것이지요.

 

: 내물왕 때 우리의 성씨가 칠원이씨였다고 주장한다면?

: “고금의 역사서를 아무리 뒤져도 칠원이씨는 없다고 판서공(夏源)이 말한 바 있어요. 삼국사기삼국유사등 수많은 도서 자료를 쉽게 검색할 수 있는 오늘날 아무리 찾아보아도 칠원이씨는 고금(古今)에도 없어요.

 

: 내물왕(재위356402) 전후해서 경주(월성)이씨 외에 다른 이씨(李氏)는 전혀 없었다는 말인가요?

: 그전에는 없다가, 통일신라(676) 이후 연합군으로 와 있던 당나라 장군이 신라에 귀화하여 이룬 중국계 이씨가 시작돼요. 연안이씨가 대표적이지요.

 

: 칠원에 칠원윤씨가 있다고 들었어요.

: 현재도 함안의 칠원에 세거지를 이뤄 살아오고 있는 칠원윤씨 들은 태종무열왕(재위654661)때 자기네 시조가 칠원성 성백에 올라 신라가 망할 때까지 7대를 세습해 왔다고 주장해요.

 

: 그간 전해 내려오는 이자성에 대해서는?

: ‘이자성에 얽힌 이야기는 전설로서의 가치만 있어요. 전설은 전설이고, 사실은 사실(fact)이지요. 경술보(1610)이래 발행된 족보 마다 이것은 항간에 떠도는 언전잡기(諺傳雜記)’라 했어요.

 

:‘이자성이란 인물이 신라 내물왕 때 칠원 성백(성주)’이면서 내사령(內史令)’을 지냈다는 것에 대해서는?

: 이것은 앞뒤가 안 맞아요. 이때 칠원성은 가야(伽倻)국에 속한 성으로서 신라와는 적대관계였어요. 적국인 신라에서 내사령(총리)직을 맡는 다는 것은 말이 안돼요.

 

: 신라의 내사령이란 직책은?

: ‘내사령직은 내각총리에 해당하는 최고위직으로서 고려시대 생겨난 제도였어요. 고려의 내사령직은 신라의 각간(角干)’에 해당되고, ‘각간직은 진골(眞骨) 출신만이 될 수 있었어요. 우리 광이가 신라 때 진골이었단 말인가요?

 

: 우리 광이가 진골 출신이었다면 안 되는지요?

: 신라 때 이씨(李氏) 성으로서 진골은 오직 경주(월성)이씨였어요. 그렇게 되면 이자성이 진골 경주이씨로서 각간(角干)직에 올랐다는 말이 돼요.

 

: 일각에서는 대각간(大角干)’직에 올랐다고 주장하는데요?

: ‘대각간(대서발한)’이란 벼슬은 내물왕 재위(356402)시에는 없던 벼슬인데, 백제를 멸망(660)시킨 공로로 태종무열왕이 김유신 장군에게 새로 만들어 내린 벼슬이에요.

 

: 전설에 의하면 칠원성백 이자성이 왕건에 끝까지 항전한 죄로 회안(광주)으로 강제 이주 했다고 해요.

: 그러면 내물왕 때부터 왕건까지가 600여년이 되니, 이자성이 600살까지 살았다는 말이지요. 이런 게 모순이 되니 칠원성 세습설로 바뀌었지요.

 

: 칠원성 세습설이란 무엇인지요?

: 이자성이 내물왕에게 공로를 세워 후손들이 칠원성을 세습해 오다가 이자성의 후손 한희(漢希) 장군에 이르러 왕건에게 패했다는 것이지요.

 

: 그러면 무엇이 문제 되나요?

: 서기562년에 신라가 가야국의 칠원성을 점령해요. 그러면 이자성 후손들이 가야국 성주로서 신라에 항복한 것이 되니 이야기가 두죽박죽이 돼요.

 

: ‘한희라는 인물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해요.

: ‘한희라는 하나의 인물이 어느 곳에는 신라 초, 다른 곳에는 신라 말, 다른 어느 곳에는 고려 말 인물로 등장하는데, 이렇게 되면 손자가 아비가 되기도 하고, 몇 대 조상이 몇 대 후손이 돼요. 이것이 바로 패륜이라는 것이지요.

 

: 이자성을 필두로 하는 상대 소목도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 전혀 근거가 없어요. 이것은 ‘1987년 대동보를 만들 때 공통의 시조를 세우기 위해 실무자들이 떠도는 전설에 따라 가공인물을 만들어 넣은 것이지요. 우리 廣李문중의 족보는 1500년대에 동고상공께서 최초로 만드신 광릉세보(廣陵世譜)가 있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고, 현존하는 경술보(1610), 갑진보(1724), 병진보(1796), 계유보(1873), 기미보(1919) 5대족보 어느곳에도 없고, 선대 조상의 어떤 비문(碑文)에도 없는 것이에요.

 

: 흔히 인용하는만성보(萬姓譜)전고대방(典故大方)은 믿을 만한 문헌인가요?

: 만성보1864년 고종 때 조선의 수백 가지 성씨를 있는 대로 수집하여 필사(筆寫)해 놓은 것으로 펴낸이(編者)도 없어요. 전고대방1924년 김효석이 수백 가지 성씨의 시조라 수집해 놓은 것으로, 국가의 중심 연구기관인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도 이 책에 대해 내용 자체가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기보다는 알기 쉽게 편찬한 것이 특징이라 했어요. 여러 가지 성씨를 있는 대로 모아놓은 것으로 구전이나 전설에 불과하여 고증(考證)과 확인같은 것은 불가하지요.

 

(: 그간 우리 광이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이 날 때마다 이 분야에 밝으신 우리 문중의 명환박사께 문의해온 바를 모았다가 궁굼해하시는 분께 도움이 될 것 같아 여기 싣는다. 24대손 시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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