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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사공 휘 예손의 묘소

관찰사공 휘 예손 (黃海道 觀察使公 諱 禮孫)

자(字)는 계윤(季胤)이니 세종(世宗) 갑인(甲寅 : 1434)년에 생원(生員)으로서 문과(文科)에 올라 대사성(大司成)과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로서 모두 명예스러운 치적을 올렸다. 예조참판(禮曹參判) 증직(贈職)을 받았다. 묘소는 광주 세촌면 대원리(廣州 細村面 大院里 : 성남시 하대원동 )둔촌선생(遁村先生) 묘소(墓所)의 서강자좌(西岡子坐)에 모셨다.

배(配)에 정부인(貞夫人) 밀양박씨(密陽朴氏)시니 부(父)는 현감 서(縣監 曙)이며 묘(墓)는 병자(1984)에 세운 묘비에 부군묘에 부라 하였다.


관찰사공 휘 예손(禮孫)의 묘비

삼가 살펴보건대, 공(公)의 기일(忌日)은 3월 7일이요, 부인(夫人)의 기일(忌日)은 정월 9일 분명하게 참판 윤우(參判潤雨)의 수필중(手筆中)에 기재되어 있으므로, 후손 영석(榮錫)이 가지고 와서 자세히 말하므로 지금에 와서 비로소 기록한다.

왕조실록(王朝實錄)에 고증(考證)해 보면, 공은 세종(世宗) 18년 사간원우정언(司諫院右正言)이 되었고 좌정언(左正言)과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과 좌사간(左司諫) 대사성(大司成)을 지내셨으며 세조(世祖) 3년에 첨지중추원사 황해도 관찰사 형조참의(僉知中樞院事 黃海道 觀察使 刑曹參議)를 지내셨고, 기묘(己卯 : 1459)년에 관압사(管押使)로서 명조(明朝)에 내왕하시다가 돌아오시는 길에 3월 11일 황해도 봉산(黃海道 鳳山)에서 졸(卒)하시니 조정에서 부의(賻儀)로 미두(米豆)를 각각 20석(二十石)과 종이 백권(百卷)과 송지(松脂) 석회(石灰)등 물건을 하사(下賜)하였다.
'이공(李公)께서는 성품이 강개(慷慨)하시고 방직하시어 용납하는데 구차함이 없어 당시에 청렴한 선비라 칭찬하더니 돌아가시매 사람마다 슬퍼했다' 갑자(甲子 : 1984)년에 그전의 묘표(墓表)에 음기(陰記)가 없었으므로 종회 주관으로 다시 묘비(墓碑)를 세우고 19대손 채진(埰鎭)이 찬(撰)하고 적었다.